시스템 에러

🔖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유익을 가져다주도록 이끄는 것은 민주주의의 역할이다. 예측하기 힘들고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드러나는 부정적 외부성을 억제하는 규제 체계를 만드는 것도 민주주의의 역할이다. 그러나 이렇게 민주주의가 제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의 과제는 이 책에서 탐구한 사안에 대한 정책을 발전시키는 데 한정되지 않는다. 정부를 개혁해서 새로운 기술이 미래에 제기할 문제를 보다 잘 다룰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우리가 할 일이다. 여기에는 정책 결정 절차의 리부팅이 필요하다. 기술자들을 끌어들이고, 정책 결정권자는 물론 시민들에게도 기술에 대해 교육시키고, 규제에 대한 스마트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접근법을 재고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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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술자들의 최적화 사고방식은 그들이 정부에 들어왔을 때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들의 식견은 위태로운 것이 무엇이고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그러나 그들의 시각은 정책 입안자들이 결국은 반드시 균형을 유지해야 할 과정에 들어가는 하나의 인풋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의 두 번째 우선 사항은 정치인들이 기술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돈을 주고 그들에게 특정한 견해를 제시하게 하는 로비스트에 좌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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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규제에 대한 신선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기술 부문의 혁신은 파괴적이며 예측 불가능하다. 규제의 구조는 융통성이 없고 반응적이다 규제 개혁은 기술의 변화보다 몇 년씩 뒤처지는 경우가 많다. 의도하지 않았거나 유해한 결과의 증거가 무시하기 힘들 정도로 누적되었을 때에야 겨우 따라잡기에 나서는 식이다. 규제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기술기업들은 결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실험, 시험, 규모 확장의 거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규제에 대한 보다 반응적인 접근법, 장기적 전략에 정착하기 전에 새로운 정책 체계를 시도하고 그 효과를 알아볼 수 있는 접근법이다.

(...) 정책 결정 절차를 재부팅하더라도 시민이 정치가들에게 규제 없는 기술의 악영향에 대한 책임을 묻 지 않는다면, 기술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민주적 제도들을 뒷전에 둘 것이다. 페이스북이 개인정보를 수집했다는 이유로 마크 저커버그를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일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 정치인들이 그런 식으로 규칙을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 민주주의의 힘은 우리 대부분이 피하고자 하는 결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데 있다. 수도꼭지에 서 마실 수 있는 물이 흘러나오게 해주고, 음식을 먹고 병에 걸리는 일이 없게 해주고, 도로에서 적절한 안전 의식을 갖고 차를 운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정부 규제의 덕분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자신의 자리가 걸려 있을 때에나 나설 것이다. 지금의 딜레마에서는 해커와 자본가의 결합이 중심 이야기이지만, 민주주의 제도가 우리를 대신해서 개입하는 데 실패한 것 역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우리가 선출한 대표들이 지금 가장 중요한 기술적 문제에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하며,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투표소에서 그들을 벌할 준비를 해야 한다.